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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편지

양심적 병역거부자 활동가에게서 온 편지

여러 활동가 분들에게.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 지 이제 대략 50일, 10% 정도가 지났습니다. 운 좋게 법정구속이 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기결수로 시작한 덕택에 벌써 여주교도소로 옮겨 와서 출역도 결정됐습니다.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는 생활에 대한 규제나 간섭은 별로 없었고, 방 넓이나 시설 면에서 불만이 컸습니다. 7~8제곱미터(평이 아니라)에는 6명 정원, 12.4제곱미터 정도에는 8명 정원으로 잠도 편히 잘 수 없었고, 화장실은 두 명이 서면 빈 공간이 없을 만큼 좁은데다 배수구나 세면대가 따로 없이 쭈그려 앉는 변기와 수도꼭지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씻다가 비누, 칫솔, 치약, 안경 등 갖가지 물건들을 다 변기에 빠뜨려 봤습니다. 그래도 화장실을 쓸 때만 잠깐 유리문에 수건을 걸어놓다거나 졸릴 때 잠깐 누워서 자도 아무 소리도 없었고 직원들도 편의를 많이 봐주는 분위기였습니다. 해서 만화책 반입이 안된다는 어이없는 규제에 대해서만 국가인권위 진정을 내려 생각 중이었습니다. (지금도 진정 내는 걸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어찌 감히 만화책을! 여주교도소는 방에 있는 다른 분이 차입한 만화 “침략! 오징어소녀”를 갖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들어오는 듯 합니다.)

  여주교도소는 시설은 서울구치소보다 두 배 세 배 좋습니다. 제가 있었던 8인방 만한 방엔 4명이 지내고, 그 1.5배쯤 넓은 방엔 6명이 지냅니다. 정원 자체도 적은 편이긴 한데, 수용자 수가 적어 거의 모든 방에 정원보다 1~3명 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양변기, 배수구, 세면대가 따로 있습니다. 반찬도 다채롭구요. 하지만 생활에 대해 규제와 간섭이 심합니다. 때로는 화가 나거나 황당한 기분이 들 때도 있구요. 다른 수용자 분들 말로는 직원들이 함부로 대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S2(완화경비처우)급 수용자들을 모아놓은 곳이라서 대부분이 고분고분하고, 초범이라 잘 모르기도 하고, 또 가석방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서 교도소 직원들에게 웬만해선 대들거나 반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장이 마음대로 규율을 강화하거나 직원들이 간섭해도 반발 없이 잘 먹혀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수용자 중 한 분은 이명박 정부들어 그런 자의적 간섭 등이 많아졌다고 하고, 현병철이 국가인권위원장이 된 뒤로 인권위 진정을 내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는다고 현병철 욕을 하셨습니다. 사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활동을 할 때도 ‘아, 위원장이 누가 되는지 신경 쓰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라는 생각도 했는데, 감옥에 오니 그런 얘기도 듣게 됩니다. 신기하지요.

 

  제가 있는 공장, 생활동에 용산참사로 수감된 김성환 씨가 같이 있으십니다.(민가협 소식지엔 아직 원주라고 돼 있더군요.) 처음에 말을 걸어주시며 전철연 후원주점 등에서 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박래군씨, 김덕진씨에 관한 좋은 말들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먹을 거나 옷가지 등을 챙겨주십니다. 김성환 씨가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 때문에 출역에서 뭔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제가 여주에 오기 며칠 전 얘기라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다 보니 감옥인권에 관해 생각을 여러 가지 해보게 됩니다. 옛날에 대학 1학년 때 NGO방문 과제를 하려고 인권운동사랑방에 가서 이미 면식이 있었던 배경내를 인터뷰 하며 감옥인권운동에 대해 질문을 했던 흑역사도 떠오르구요.(웃음) 청소년운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여전히 제일 크긴 하지만, 늙었다고 청소년들에게 따돌림과 멸시를 받게 되면 감옥인권 쪽 일을 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ㅋㅋ;

  이제 hrnet이나 youthhr 등 메일링리스트로 저 말고 다른 청소년활동가들이 많이 메일을 보낼 텐데요. 혹시 아직도 스팸메일함으로 가게 방치해두신 건 아니겠지요? 어쩐지 저 출소하면 이메일 함에 메일링리스트로 온 것만 수만 통일까 두렵네요. 그럼 다시 뵙는 날까지 열심히 활동하며 잘 계시길 바랍니다.

        

2012.06.17.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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