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에 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평화인권센터 공동으로 올해 첫 강연회를 열었다. 동아시아 군사기지 문제를 연구하는 정영신 박사와 함께 <동아시아 반기지 운동의 역사와 경험>을 주제로 십여 명이 모여 경청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근대세계에서 미국은 초국적 기업 네트워크와 비영토적 해외기지 네트워크를 병행해 헤게모니를 장악해 왔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1970년대까지 꾸준히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미군이 주둔할 명분이 있었고, 그에 대해 꾸준히 반기지 운동이 전개되었다.
태국과 필리핀은 민주화 직후 5년 이내에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민족주의적인 반기지 운동으로 전환시켰고 그 결과 미군이 철수한 나라들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안보조약을 개정하는 정도에 그쳤고, 오랜 시간에 걸친 반기지 운동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일본은 지자체가 주축이 되어 반기지 운동을 이끈 사례가 특징적이다. ‘지자체의 반란’이라 불리는 요코하마-사가미하라 방식에서는 혁신 지자체가 베트남으로 전차를 운송하는 미군에 대해 도로법 위반이라며 맞섰다. 국내법을 통해 미일지위협정과 미군의 전쟁 수행에 제동을 건 사례이다.
한국은 지방자치제가 뒤늦게 도입된 탓에 지자체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매향리의 경우를 보면, 지자체가 빠진 상태에서 전국적 조직들이 적극 결합하고, 오키나와나 일본 본토로부터 연대가 이루어지면서 지방 스케일 차원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사실 국가 스케일의 반기지 운동의 목표와 지방 스케일의 운동 목표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동맹 조약이나 기지협정의 폐기를, 후자는 개별 기지 피해의 해소를 목표로 한다. 지방 스케일의 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기지 후보지를 폭탄 돌리기하는 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제주에서 화순, 위미, 강정으로 해군기지 후보지가 옮아간 것을 목격했다.
지방 스케일의 반기지 운동이 폭탄 돌리기를 넘어 성공하려면 자기 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기피한다는 목표를, 한국 영토 어디에도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데 반대한다는 운동으로 맥락을 옮겨야 한다. 그래서 전국 네트워크와의 연대가 중요하다. 전국 네트워크의 응원을 받으면 지역이 고립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자연 상태를 곧 전쟁 상태로 여긴 ‘홉스-베버적 근대’ 세계에서 말하는 평화에 대해 비판이 필요하다. 폭력을 국가에 일임함으로써 평화 영역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평화를 누리는 ‘시민’과 국가 폭력에 희생된 ‘비국민’이 분리된다는 뜻이다. 기지 문제의 책임은 평화를 누리는 자가 함께 나눠야 한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지 오래되었다. ‘제국’은 세계 평화를 이루는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고 설득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 헤게모니 아래에서 그 권력 관계가 내면화된 나머지 제국군의 경찰 역할이 자신들의 입장과 같다고 정서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을 흔히 본다. 우리 마음 속 군사기지 몰아내기, 그리고 기지 문제에 책임을 통감하고 연대하는 일이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반기지 운동의 새 국면을 맞기 위해 할 수 있는 첫걸음일 것이다. 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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